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 나오는 이 두 줄에서 그가 퇴임 뒤에 겪어야 했던 압박과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다. 그 핵심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관련한 권력비리 의혹 사건이 있다. 이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은 사실상 폐족되는 멸문지화를 당했고,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정을 맞았다.
비리가 먼저 있고 징벌이 뒤따르는 것이 상례이지만, 박씨 사건은 철저하게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제압하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권력기관이 일제히 나서 십자포화를 날리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시중에 현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평가가 파다한 것도 국세청과 검찰 등 권력기관이 박씨 사건과 관련해 벌인 ‘이상한’ 행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박씨 사건에는 이른바 3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이 모두 관여했다. 먼저 국세청은 지난해 7월 연매출 3000억원대의 지방 중견기업인 태광실업에 심층·기획 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해 넉달간이나 먼지털기식 조사를 벌였다. 연임을 노리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여기서 포착된 노 전 대통령 쪽과 박씨 사이의 수상한 돈거래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다음번에 나선 것은 검찰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인원을 거의 갑절로 늘리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가족의 혐의를 미주알고주알 뒤로 흘리면서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했다. 언론을 매개로 한 공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정원도 빠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이 박씨로부터 억대의 고급시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흘리며 노 전 대통령 망신 주기 대열에 가담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권력기관의 사유화 현상으로 볼 때, 이들 기관의 움직임이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부의 뜻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죄보다 사람을 미워한’ 현 정권이 만들어낸 최대의 비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기관을 앞세운 정치보복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과제이다.